다양한 자료실

HOME > 다양한 자료실

백인재 휘 곤변(鯤變)祖에 관하여...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휴휴2
댓글 0건 조회 25회 작성일 26-01-09 23:33

본문

 진사(進士) 이곤변(李鯤變)은 시조 식(軾) 13세손이며 사천(동성)이씨의 현조(顯祖)인 구암선생의 차손(次孫)으로 자는 자거(子擧)이며 호는 백인재(百忍齋)로 백인재공파의 파조이다. 


구암선생의 사려(思慮)가 많았던 애중지손(愛重之孫)으로 일찍이 그는 형 호변(虎變)과 나란히 을묘 진사시(乙卯進士試)에 동방(同榜)하여 삼천진(三千鎭 , 지금의 삼천포) 권관(權官)을 지냈으며, 왜란 때는 형 우소재공과 더불어 이순신을 도와 무공을 세우고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녹권(錄卷)에 책록되었다. 


그는 기절(氣節)이 웅위(雄偉)하고 사리(事理)에 밝은 걸출(傑出)로 문사(文詞)에 능하고 반궁(泮宮, 성균관의 다른 이름)에 유학하여 당세에 명성을 떨쳤다고 전해진다.


 일찍이 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 1547~1634)을 섬겼는데 오리께서는 백인재를 가리 뛰어남이 있는 남도(南道)의 인물이라 칭찬하였으며, 또한 많은 문집(文集)을 남겼으나 세전하는 것은 오로지 『의와졸변』 한 권이 있을 뿐이다.


 이곤변이 본서를 편찬한 것은 조부인 이정와 남명 조식 간의 관계에서 생긴 문제 때문이었다. 둘 사이는 누구보다 친했으나 1568(선조 1)년 진주 수곡면에서 발생한 '하종악 후처 음행사건(淫行事件)때문에 사이가 틀어졌다.

 음부옥은 진주의 죽은 진사(進士) 하종악(河宗嶽)의 후처 이씨(李氏)의 음행 소문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옥사이다.

 이 사건에 조식과 이정이 서로 다른 입장으로 미묘하게 대립하다가 급기야 조식이 이정과 절교하고, 조식의 문인들이 과부 이씨와 간부(姦夫)의 집을 헐고 향리에서 내쫓는 사태가 발생하였으며, 이 일은 조정에까지 보고되어 정치적인 문제로 비화하기에 이르렀다.


 훗날 이정의 손자 이곤변이 그 조부의 결백함을 밝히기 위해서 ‘졸변(拙辨)’을 짓고, 조식의 손자 조준명(曺浚明)이 이를 반박하는 ‘반변(反辨)’을 짓는 등, 두 사람의 사후에도 이 사건으로 인해 양쪽 집안과 지역의 대립이 계속되었다.


 "의와졸변(疑訛拙辨)" 본문의 내용은 이곤변이 자신의 조부를 비난하면서 공개적으로 절교를 선언한 남명의 선비답지 않은 행위를 조목조목 비판했다.


국립중앙도서관 고문헌 해제집(2023)  222페이지에서..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