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재 휘 곤변(鯤變)祖에 관하여...
페이지 정보

본문
진사(進士) 이곤변(李鯤變)은 시조 식(軾) 13세손이며 사천(동성)이씨의 현조(顯祖)인 구암선생의 차손(次孫)으로 자는 자거(子擧)이며 호는 백인재(百忍齋)로 백인재공파의 파조이다.
구암선생의 사려(思慮)가 많았던 애중지손(愛重之孫)으로 일찍이 그는 형 호변(虎變)과 나란히 을묘 진사시(乙卯進士試)에 동방(同榜)하여 삼천진(三千鎭 , 지금의 삼천포) 권관(權官)을 지냈으며, 왜란 때는 형 우소재공과 더불어 이순신을 도와 무공을 세우고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녹권(錄卷)에 책록되었다.
그는 기절(氣節)이 웅위(雄偉)하고 사리(事理)에 밝은 걸출(傑出)로 문사(文詞)에 능하고 반궁(泮宮, 성균관의 다른 이름)에 유학하여 당세에 명성을 떨쳤다고 전해진다.
일찍이 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 1547~1634)을 섬겼는데 오리께서는 백인재를 가리 뛰어남이 있는 남도(南道)의 인물이라 칭찬하였으며, 또한 많은 문집(文集)을 남겼으나 세전하는 것은 오로지 『의와졸변』 한 권이 있을 뿐이다.
이곤변이 본서를 편찬한 것은 조부인 이정와 남명 조식 간의 관계에서 생긴 문제 때문이었다. 둘 사이는 누구보다 친했으나 1568(선조 1)년 진주 수곡면에서 발생한 '하종악 후처 음행사건(淫行事件)때문에 사이가 틀어졌다.
음부옥은 진주의 죽은 진사(進士) 하종악(河宗嶽)의 후처 이씨(李氏)의 음행 소문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옥사이다.
이 사건에 조식과 이정이 서로 다른 입장으로 미묘하게 대립하다가 급기야 조식이 이정과 절교하고, 조식의 문인들이 과부 이씨와 간부(姦夫)의 집을 헐고 향리에서 내쫓는 사태가 발생하였으며, 이 일은 조정에까지 보고되어 정치적인 문제로 비화하기에 이르렀다.
훗날 이정의 손자 이곤변이 그 조부의 결백함을 밝히기 위해서 ‘졸변(拙辨)’을 짓고, 조식의 손자 조준명(曺浚明)이 이를 반박하는 ‘반변(反辨)’을 짓는 등, 두 사람의 사후에도 이 사건으로 인해 양쪽 집안과 지역의 대립이 계속되었다.
"의와졸변(疑訛拙辨)" 본문의 내용은 이곤변이 자신의 조부를 비난하면서 공개적으로 절교를 선언한 남명의 선비답지 않은 행위를 조목조목 비판했다.
국립중앙도서관 고문헌 해제집(2023) 222페이지에서..
- 이전글미수 허목의 제수(휘 곤변(鯤變)의 손녀)의 묘명(墓銘) 26.01.1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