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동성)이씨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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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씨족은 고려조 25대 충렬왕(1274~1308) 때 국자진사 송악군수(松岳郡守)를 지낸 휘(諱) 식(軾) 조를 시조로 받들고 선향(先鄕)을 사천(泗川 : 古號 東城)으로 하는 사족(士族)으로서 선세(先世)에는 어느 대에나 인물이 적지 않아서 반열(班列)이 높아 향당(鄕黨)의 칭송을 받아 온 벌족(閥族)이다.

우리 조상에는 백세에 스승이 될 만한 학문이 있었고, 인륜과 도덕에 앞서는 효(孝)가 있어 이를 가품(家品)으로 삼고 성관(姓貫)의긍지와 자존을 지켜온 천년을 앞둔 종족(宗族)이다. 우리의 성관은 사천(泗川)과 동성(東城)을 동원동본(同源同本)으로 하는 9개 종파 1만 1천 5백여 종족이 나라 전역에 뻗혀 일익번창(日益繁昌)하고 있다.

 

사천(泗川)은 신라·고려·조선의 삼조(三朝)를 통하여 사물(史勿)·사수(泗水)·사주(泗州)·사천으로 변칭되어 왔고, 별칭으로는 동성(東城)으로 쓰여져 왔으며, 현재는 경상남도 사천시이다. 동성(東城)이란 언제 어떻게 무엇 때문에 불렸는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으나 사천읍지 동성승람, 사천현 여지승람 등에 따라 사천시지에서 사천의 별칭이라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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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씨족은 고려조 25대 충렬왕(1274~1308) 때 국자진사 송악군수(松岳郡守)를 지낸 휘(諱) 식(軾) 조를 시조로 받들고 선향(先鄕)을 사천(泗川 : 古號 東城)으로 하는 사족(士族)으로서 선세(先世)에는 어느 대에나 인물이 적지 않아서 반열(班列)이 높아 향당(鄕黨)의 칭송을 받아 온 벌족(閥族)이다.

우리 조상에는 백세에 스승이 될 만한 학문이 있었고, 인륜과 도덕에 앞서는 효(孝)가 있어 이를 가품(家品)으로 삼고 성관(姓貫)의긍지와 자존을 지켜온 천년을 앞둔 종족(宗族)이다. 우리의 성관은 사천(泗川)과 동성(東城)을 동원동본(同源同本)으로 하는 9개 종파 1만 1천 5백여 종족이 나라 전역에 뻗혀 일익번창(日益繁昌)하고 있다.

 

사천(泗川)은 신라·고려·조선의 삼조(三朝)를 통하여 사물(史勿)·사수(泗水)·사주(泗州)·사천으로 변칭되어 왔고, 별칭으로는 동성(東城)으로 쓰여져 왔으며, 현재는 경상남도 사천시이다. 동성(東城)이란 언제 어떻게 무엇 때문에 불렸는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으나 사천읍지 동성승람, 사천현 여지승람 등에 따라 사천시지에서 사천의 별칭이라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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