百忍齋遺稿序 壬辰1652년(효종 3년)[허목(許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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百忍齋遺稿(백인재유고)는 전하지 않지만
그 序(서문)은 허목(許穆)이 쓴 미수문집인 기언(記言)에 있다.
내가 젊은 시절에 오리 이상국(梧里 李元翼)을 섬겼다. 이상국(께서 늘 남쪽 지방의 인물을 논할 때마다 반드시 사상(泗上, 사천)의 이 상사(李上舍, 鯤變)를 뛰어난 고결한 인물이라 칭하였다.
나는 이 상사와 함께 학문을 논하고 교유하지 못한 것을 늘 아쉬워하였다.
그러나 그의 자손들을 만나보니 모두가 평범한 인물이 아니었고, 그 집안의 기풍과 여운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그들과 대화를 나누면 자연히 그 선대의 인품을 떠올릴 수 있었고, 이상국의 말씀이 귀에 생생히 되살아났다.
이제 그의 남긴 글을 읽어보니, 참으로 옛것을 믿고 좋아하며 세속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은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가 서로 시문을 주고받던 인물들, 곧 구암(懼庵) 우사군(禹使君)과 석전(石田) 성상사(成上舍) 역시 세상에 이름난 고결한 인물들이었다. 벼슬을 하든 하지 않든, 모두 몸가짐을 깨끗하게 지킨 사람들이었다.
나는 사사로이 그의 시문 몇 편을 뽑아 후세에 전하여, 백 대 뒤에도 그것을 읽고 감동하는 이가 있게 하고자 한다. 이 상사의 이름은 곤변(鯤變), 자는 자거(子擧)이며, 사천 사람으로서 구암(龜巖) 이 선생의 손자이다. 옛것을 좋아하며 스스로 닦아 ‘백인재(百忍齋)’라 자호하였다.
상지(上之) 3년(1652년) 단오 뒤의 병자일에, 양천 허목 미수(眉叟)가 서문을 쓰다.
원문
百忍齋遺稿序 壬辰1652년(효종 3년)[허목(許穆)]
吾少時。事梧里李相國。相國每論南州人物。必稱泗上李上舍傑出爲高人。吾恨不及李上舍從遊。見其子孫。皆非碌碌庸人。其遺風餘韻尙在。與之語。足想其前人。追思相國之言在耳。今且讀其遺篇。信而好古。有不汚穢於塵俗者。其所與酬和者。懼庵禹使君,石田成上舍。皆有高世之名。或仕或不仕。而要亦潔其身者也。穆私取其詩文若干首以傳後。使百代之下。有起而相感者云。上舍諱某。字某。泗川人。龜巖李先生之孫。嘗擧進士不第。好古自修。自號曰百忍齋。上之三年端陽後日丙子。陽川許穆眉叟。序。
휘 곤변(鯤變)祖는 蓮榜(연방:조선시대 소과(小科)인 생원시·진사시에 합격한 사람들의 명부인 사마방목(司馬榜目))에 올랐는 데, 허목은 인지하지 못한 것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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