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1년 신묘보의 첫 머리글(序)의 AI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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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城李氏族譜序
李氏之先 系出泗川 鄭上舍斗 撰龜巖公行狀 云 國子進士諱世芳之後也 又云自高祖以上十二世 世為司馬 成均進士彝倫 於公 實爲高祖 今竊攷其家譜斷簡所記 令同正世芳 生保勝郎將彥 彥 生潭陽教導先生稵 稵生彜倫 系牒所載 僅四世 及得一紙所記 令同正之上 有進士忠壽 生員琮 為二世 然則何以獨推世芳 為所自出之祖而云云也 又高祖以上十二世 無所攷 蓋其舊藏家譜 於兵亂中失之 子孫 隨聞隨錄 亦頗殘缺 如比 僅依世傅壽瑞詩卷叙 及南冥所撰叅判公神道碑文 次列六世世次 並載其事大略 以表箸賢者之世 積行所自云
後學陽川杵穆 謹識
[번역]
동성 이씨 족보 서문 (東城李氏族譜序)
이씨(李氏)의 선조는 계통이 사천(泗川)에서 나왔다. 상사(上舍) 정두(鄭斗)가 기록한 구암공(龜巖公, 이정)의 행장(行狀)에 이르기를, “국자진사(國子進士) 휘(諱) 세방(世芳)의 후손이다”라고 하였고, 또 이르기를 “고조(高祖) 이상 12대 동안 대대로 사마(司馬, 생원·진사)를 지냈다”라고 하였다. 성균진사 이이륜(李彜倫)은 구암공에게 실로 고조부가 된다.
이제 그 가문의 보첩(譜牒) 중 남겨진 단편적인 기록을 살펴보니, 영동정(令同正) 세방(世芳)은 보승랑장(保勝郞將) 언(彦)을 낳았고, 언은 담양교도(潭陽敎導) 선생 자(稵)를 낳았으며, 자는 이륜(彜倫)을 낳았다. 계보에 실린 것이 겨우 4세(世)뿐이다. 그러다 한 장의 종이에 기록된 것을 얻었는데, 영동정(세방)의 위에 진사 충수(忠壽)와 생원 종(琮) 2대가 더 있었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유독 세방을 (족보의) 시조로 추대하여 언급하였겠는가?
또한 고조 이상 12세에 대해서는 고찰할 길이 없다. 대개 그 집안에 대대로 소장해 오던 족보를 병란(兵亂) 중에 잃어버려, 자손들이 들은 대로 기록하다 보니 이처럼 몹시 불완전하게 된 것이다. 이에 겨우 대대로 전해오는 '수서시권(壽瑞詩卷)'의 서문과 남명(南冥, 조식) 선생이 지은 '참판공(參判公) 신도비문'에 의거하여, 6대의 차례를 나열하고 그 일의 대략을 함께 실음으로써, 현자(賢者)의 가문임을 드러내고 덕행을 쌓아온 근원을 밝히고자 한다.
후학(後學) 양천(陽川) 허목(許穆)이 삼가 쓰다.
[해설 및 참고사항]
본관 관련: 본문에서 "계출사천(系出泗川)"이라 언급된 것처럼, 동성 이씨는 사천 이씨(泗川 李氏)를 뿌리로 합니다.
주요 인물:
구암 이정(李楨): 퇴계 이황, 남명 조식과 교유한 영남의 저명한 유학자입니다.
남명 조식: 구암 이정의 스승이자 동료로, 본문에 언급된 신도비문을 작성했습니다.
허목(許穆): 이 서문을 쓴 저자로, 조선 숙종 때의 영의정이자 남인의 영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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