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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무산사 시비(武山祠 詩碑)
무산사(武山祠)는 신재(愼齋) 주세붕(周世鵬, 1495~1544) 선생을 배향하고 있는 곳이다. 이 사당 안에 경(敬)이란 글자를 새긴 바위가 있고 그 옆에 시(詩)를 각인한 비석(碑石)이 서 있다. 정면에 恭敬如形影(공경여형영) 表恭由內敬(표공유내경) 書紳貴子張(서신귀자장) 參倚方言行(참의방언행)이라는 시가 있고, 동쪽 면에 ‘신제선생이 구암(龜巖) 이정(李楨)선생과 무릉(武陵)에서 수일간 유숙하면서 경(敬)자(字)의 뜻을 서로 강론한 다음 시 한 절 귀를 지었다.’라 새기고 있다. 그리고 뒷면에는 ‘공경이란 형체가 그림자 같아서, 표면의 공손함은 내심에 있노라. 놀랏도다 자장(子張)이 큰 띠에 적었으니, 언행이 바름을 잠시라도 잊으랴.’ 하고 시문을 설명하고 있다. 이 내용은 신재선생(愼齋先生)의 글을 모아둔 무릉잡고 2권(武陵雜稿卷之二) 별집(別集)의 시(詩) 주경음(主敬吟)에도 있고, 무릉잡고 부록 2권(武陵雜稿附錄卷之二)의 신재선생 년보(愼齋先生年譜)편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무산사 시비
中宗三十年(1535년) 乙未 愼齋先生
四十一歲 (龜巖先生二十四歲)
與李剛而(楨) 論敬字之義。
李公自泗上訪先生于武陵。留數日。
相與講論敬字之義。先生贈一絶曰。
恭敬如形影。表恭由內敬。書紳貴子
張。參倚方言行
신재선생의 유적 무산사(武山祠)는 경남유형문화재 제143호로 경남 함안군 칠서면 무릉리 44번지에 위치하고 있는데, 원래 1591년(선조 24)에 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그의 생가(生家)자리에 건립한 동림서원(桐林書院) 터였다. 임진왜란 당시에 불탄 것을 후손들이 다시 지었으며, 1676년(숙종 2) ‘덕연(德淵)’이란 편액(扁額)을 왕으로부터 받았다. 이후 1868년(고종 5) 공포된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서원이 헐리자 선생의 영정을 종가사당(宗家祠堂)으로 옮겼다가 1919년에 사당 옆에 전각을 세우고 서당을 지었는데 이것이 곧 무산사(武山祠)와 무산서당(武山書堂)이다.
신재선생이 이 시를 받은 1535년은 신재선생의 나이 41세로 칠원 무릉에서 부친상을 마치고 어머니를 봉양하고 있을 때이며, 구암선생의 나이는 약관 24세이었다. 이듬해 구암선생의 나이 25세에 근정전에서 치러진 문과 별시에서 장원을 하게 된 것으로 보아 신재선생을 찾아가 강론한 이 시기가 공부의 절정이었고, 구암선생의 학구열(學究熱)이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 뒤 구암선생의 나이 32세에 영천군수로 있을 때 당시 풍기군수로 있던 신재선생을 만나러 가셨고, 35세 때 신재선생이 이정선생의 선산부사 부임 축하시를 지어주었으며, 37세 때 서울로 승진해 간 신재선생에게 시를 지어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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