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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참판공 묘정신도비(參判公 墓庭神道碑)

 

10세조이신 참판공(參判公 : 휘 담(湛) : 1484~1550)의 산소(山所)를 분묘등(墳墓嶝)으로 이장(移葬)하면서 1568년에 구암선생이 세웠다. 참판공은 선생의 아버지로 1550년에 구암땅 서반(西畔)에 장사 하였으나 호조참판(戶曹參判) 벼슬이 내린 뒤 개장(改葬) 기록(記錄)에 남명(南冥 曺植 ; 1501~1572)이 신도비문(神道碑文)을 쓰면서 구암선생을 지칭하며 공부(公俯 : 조정)에 상빈(上賓 : 재상)이라 이른 점은 기억해 두어야 할 일이다.

 

신도비문 말미에는 “…降以申甫(강이신보) 王臣蹇蹇(왕신건건) 家子振振(가자진진) 朱緩新加(주완신가) 총경신인(寵傾神人) 훤경자부(喧驚紫府) 公作上賓(공작상빈) 徵士(징사)昌山(창산) 曺植(조식) 撰(찬).

…주나라 명신 신백(申伯)과 중산보(仲山甫)와 같은 사람을 내려주었도다. 임금을 위하여 충성을 다했으며, 가정과 자식에게는 어진 모습이었다. 조정에서 부르는 행렬 새로이 더해지고, 신이 은총을 기울이도다. 선인도 놀라 분주히, 빈객으로 모실지어다. 징사(徵士) 창산 조식(昌山 曺植) 쓰다.”라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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