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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서악정사와 서악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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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서악서원

 

서악정사(西岳精舍)는 구암선생(龜巖先生)이 경주부윤(慶州府尹:1560년 9월~1563년 1월)으로 부임(赴任)하여 제일 먼저 이룩해 놓은 사적(事蹟)이다. 경주는 신라의 옛 도읍지로 구암선생이 부윤(府尹)으로 갔을 때까지도 전국에서 가장 다스리기 힘든 곳이었다. 백성들은 흐트러져 갈피를 잃고 풍속은 문란(紊亂)하기 그지없었으며, 신라 때의 여러 왕릉은 허물어졌거나 논밭으로 변해 있었으니 이를 개탄(慨歎)하여 먼저 여러 규정(規程)을 만들어 치산(治山)하고 백성을 어질게 덕(德)으로 다스리며 또 명령(命令)하여 가르치니 비로소 군신(君臣)이 협력하여 영(令)에 따랐다.

 

1561년(명종16) 10월 선도산(仙桃山) 아래에 선생이 서당(書堂)을 세워 백성들에게 글을 읽히고 공부하게 하였으니 여기가 서악정사(西岳精舍)이며 이어서 사당(祀當)을 세워 신라삼현(新羅三賢)의 유영(遺靈)을 모시고 서원을 창건(創建)함으로써 우리나라에서 서원(書院)이 세워지기로는 주세붕(周世鵬)․이퇴계(李退溪)에 이어 서악서원(西岳書院)이 세 번째의 일이다. 서악지(西岳誌), 서악서원창건기(西岳書院創建記)), 서원제현록(書院諸賢錄) 등이 있다. 서악서원은 경주시 서악동 615번지에 위치하고, 경상북도 기념물 제19호로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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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 서약동에 있는 서원이며 경상북도 기념물 제19호이다 "이정" 선생이 경주부윤(1560.9~1563.1 49~52세) 있으면서 "김유신" 위패를 모시기 위해 세운 사당인데 지방 유림들의 의견을 수렴 "설총" , "최치원"의 위패도 함께 모시고 있음("서악정사" 현판 글씨 퇴계 선생이 직접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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