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스러운 후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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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무랑공파의 자랑스러운 후예
휘 영 (英, 12세, 1570년대) : 선무랑공 휘 근(根)의 자(子), 자(字)는 춘배(春培)이고 군기시(軍器寺; 병기에 대한 행정을 맡은 관청)의 주부(主簿)를 하다.
휘 득선(得善, 13세, 1600년대) : 휘 영(英)의 자(子), 자(字)는 이서(以瑞)이고 통정대부(通政大夫)이다.
휘 인발(仁潑, 14세, 1636∼1701) : 휘 득선(得善)의 자(子), 자(字)는 사함(士涵)이고 통정대부(通政大夫)이다.
휘 의백(義白, 14세, 1639∼미상) : 휘 득선(得善)의 자(子), 자(字)는 사성(士成)이고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첨정(종4품)을 하다.
휘 정노(廷老, 15세, 1681∼1768) : 휘 의백(義白)의 자(子), 자(字)는 수민(壽民)이고 통정대부(通政大夫)이다.
종춘(鍾春, 23세, 1959년∼, 부산) : 휘 팔준(八俊, 보명은 容煥)의 자(子), 공학박사이다.
팔성(八成, 22세, 1944년∼, 서울) : 휘 범금(凡金, 보명은 柱範)의 자(子), 보명은 덕환(德煥)이고 우리금융지주회사 회장을 하다.
휘 규일(圭鎰, 21세, 1868∼1945) : 휘 광우(光宇)의 자(子), 자(字)는 계선(啓善)이고 증(贈) 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이다.
휘 승현(承鉉, 22세, 1894∼1963) : 휘 규일(圭鎰)의 자(子), 자(字)는 중경(中卿)이고 호(號)는 송사(松史)이며 적명(籍名)은 을생(乙生)이고 증(贈) 영내부주사(營內府主事)이다.
창민(昶旼, 24세, 1956∼, 서울) : 휘 홍재(洪在, 보명은 洪榮)의 자(子), 보명은 준대(俊大)이고 서울시 공무원에 임용되어 사무관을 하였고 녹조근정훈장(綠條勤政勳章)을 받다.
광식(光植, 24세, 1967∼): 휘 진영(珍英, 보명은 塡英)의 자(子), 보명은 순종(順鍾)이고 서울시경 경감을 하다.
박양자(朴良子, 23세 진웅(塡雄)의 처, 죽산박씨, 1943∼) : 휘 일원(一元)의 자부(子婦), 시부모 섬김이 지극하여 효부 표창장, 포상을 받다.
공보경(孔保冏, 24세 정종(晶鍾, 적명 靑樹)의 처, 곡부공씨, 1970∼) : 진웅(塡雄)의 자부(子婦), 국가공인회계사 및 세무사를 하다.
부식(富植, 24세, 1973∼) : 진웅(塡雄)의 자(子), 보명은 봉종(奉鍾)이고 농림축산식품부 사무관을 하다.
변혜옥(卞惠玉, 24세 봉종(奉鍾, 적명 富植)의 처, 밀양변씨, 1974∼) : 진웅(塡雄)의 자부(子婦), 국토교통부장관의 표창,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의 표창이 있다.
휘 규학(圭學, 21세, 1874∼1941) : 휘 광우(光宇)의 자(子), 자(字)는 문선(文善)이고 증(贈) 순능태봉승(順陵泰奉陞)정삼품(正三品)승정원(承政院)좌부비서승(左副秘書承)이다.
이옥자(李玉子, 24세 재원(在元)의 처, 경주이씨, 1959∼) : 석대(錫大)의 자부(子婦), 병무청 사무관을 하다.
휘 갑배(甲培, 23세, 1928∼2003, 하동 진교) : 휘 윤관(閏灌, 보명은 忠炫)의 자(子), 중고등학교 교장을 하다.
찬홍(燦弘, 24세, 1953∼) : 휘 갑배(甲培)의 자(子), LG연구소 부사장을 하였고 장영실과학상을 수상하다.
주홍(柱弘, 24세, 1957∼, 부산) : 휘 갑배(甲培)의 자(子), 내과의사를 하다.
영배(永培, 23세, 1940∼, 서울) : 휘 윤덕(潤德, 보명은 君炫)의 자(子), 중고등학교 교장을 하다.
춘배(春培, 23세, 1942∼, 서울) : 휘 윤덕(潤德, 보명은 君炫)의 자(子), 외과의사를 하다.
수철(壽哲, 24세, 1957∼) : 휘 정부(正富, 보명은 順富)의 자(子), 교회 장로를 하다.
휘 장인(章仁, 22세, 1914∼2001, 하동 진교) : 휘 덕범(德範, 보명은 圭範)의 자(子), 보명은 장현(章炫)이고 진교면 초대 면위원(1952∼1956)을 하다.
동현(東炫, 22세, 1936∼, 거제) : 휘 덕범(德範, 보명은 圭範)의 자(子), 보명은 창현(昌炫)이고 고등학교 교장을 하다.중기(仲基, 23세, 1970∼) : 동현(東炫, 보명은 昌炫)의 자(子), 천주교 사제를 하다.
동영(東榮, 23세, 1941∼, 서울) : 휘 장인(章仁, 보명은 章炫)의 자(子), 대한재보험주식회사 코리안리에서 이사(理事)를 하다.
호정(鎬汀, 24세, 1976∼,서울) : 동영(東榮)의 자(子), 중앙데일리(daily) 경제부 차장(次將)을 하다.
호진(鎬震, 24세, 1978∼,경기도 남양주) : 동영(東榮)의 자(子), 내과의사를 하다.
기 (基, 23세, 1950∼, 서울) : 휘 장인(章仁, 보명은 章炫)의 자(子), 보명은 동기(東基)이고 대한무역진흥공사(KOTRA)에서 차장(次長)을 하다.
휘 양옥(養玉, 23세, 1924∼1992, 진주) : 휘 순재(舜在, 보명은 在炫)의 자(子), 보명은 준옥(埈玉)이고 중학교 교장을 하였으며 홍조근정훈장(紅條勤政勳章)을 받다.
영근(英根, 24세, 1952∼, 하동 횡천) : 휘 양옥(養玉, 보명은 埈玉)의 자(子), 보명은 영종(英鐘)이고 호(號)는 휴휴(休休)이며 도교육청 장학관, 고등학교 교장을 하였고 홍조근정훈장(紅條勤政勳章)을 받았으며 대종회 수석부회장을 하다.
춘근(春根, 24세, 1954∼, 서울) : 휘 양옥(養玉, 보명은 埈玉)의 자(子), 보명은 춘종(春鐘)이고 한국 금융감독원 국장을 하다.
휘 계성(桂成, 22세, 1924∼?, 북한) : 휘 도수(道守, 보명은 圭漢)의 자(子), 보명은 계현(桂炫)이다. 14세 때 조선일보사 주최 전조선음악콩쿠르에서 바이올린 독주로 2등 입상하고 일제강점기 음악콩쿠르에 출연한 그의 기량에 대한 평은 朝光(1938)38호에 발표된 문학준의 평론 (제2회 전 조선남녀음악콩쿨 평)에 소개되다. 해방 후 1946년 연희전문 문과 재학 때 바이올린을 개인교수 받았고, 1946년 고려교향악단(高麗交響樂團)의 제1 바이올린 주자였으며 1947년 서울관현악단의 멤버로 활동하다. 1948년 서울교향악단에서 활동했고 1949년 9월 박민종(朴敏鍾)·김희조(金熙祚)·전봉초(全鳳楚)와 함께 박민종 4중주단을 창단하다. 1950년 6·25전쟁 때 조선인민군 전선경비대사령부 협주단 악장을 지내다. 1952년 조선중앙방송관현악단 연주가, 악장으로 활약했고 1964년부터 조선예술영화촬영소 관현악단 악장, 국립교향악단 악장을 지냈으며 1979년 공훈배우가 됐고 국기훈장 1급을 비롯한 훈장과 메달을 받다. 북한 국립교향악단 고문악장을 하다.
준아(俊娥, 23세, 1960∼, 서울) : 휘 계성(桂成)의 질녀(姪女), 해성(海成, 보명은 海炫)의 딸(女), 국립국악원(國立國樂院) 정악단(正樂團)에 소속하였고 국가 무형문화재 제41호 가사(歌詞) 예능보유자(藝能保有子, 2018년, 문화재청 지정)를 하다.
준범(埈範, 23세, 1985∼, 서울) : 용현(龍炫)의 자(子), 국가공인회계사를 하다.
헌준(憲俊, 23세, 1975∼) : 용권(龍權, 보명은 光炫)의 자(子), 천주교 사제를 하다.
휘 규형(圭炯, 21세, 1917∼1992, 남원) : 휘 성우(成宇)의 자(子), 자(字)는 장수(長壽)이고 어버이를 섬김에 지극한 효도로써(事親至孝) 표창이 있다(有表彰).
휘 준현(準炫, 22세, 1932∼2017, 진주) : 휘 영숙(瑛淑, 보명은 圭鉛)의 자(子), 호(號)는 송산(松山)이고 기상서기관(氣象書記官)으로 울진,통영,진주,마산 기상대장(蔚珍統營晋州馬山氣象臺長)을 하였고 녹조근정훈장(綠條勤政勳章)을 받다.
동현(東鉉, 22세, 1937∼, 순천) : 휘 봉석(鳳錫, 보명은 圭甲)의 자(子), 보명은 동현(東炫)이고 호(號)는 회정(晦亭)이며 초등학교 교장을 하였고 황조근정훈장 (黃條勤政勳章)을 받다.
연도(演都, 23세, 1967∼, 경기도 군포) : 동현(東鉉, 보명은 東炫)의 자(子), 보명은 중희(中熙)이고 철학박사이며 대학교 교수를 하였고 저서로서 근현대 중국 이상사회론이 있다.
(각 종파별 자랑스러운 후예는 다음의 해당 파를 선택하시면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선무랑공파의 자랑스러운 후예
휘 영 (英, 12세, 1570년대) : 선무랑공 휘 근(根)의 자(子), 자(字)는 춘배(春培)이고 군기시(軍器寺; 병기에 대한 행정을 맡은 관청)의 주부(主簿)를 하다.
휘 득선(得善, 13세, 1600년대) : 휘 영(英)의 자(子), 자(字)는 이서(以瑞)이고 통정대부(通政大夫)이다.
휘 인발(仁潑, 14세, 1636∼1701) : 휘 득선(得善)의 자(子), 자(字)는 사함(士涵)이고 통정대부(通政大夫)이다.
휘 의백(義白, 14세, 1639∼미상) : 휘 득선(得善)의 자(子), 자(字)는 사성(士成)이고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첨정(종4품)을 하다.
휘 정노(廷老, 15세, 1681∼1768) : 휘 의백(義白)의 자(子), 자(字)는 수민(壽民)이고 통정대부(通政大夫)이다.
종춘(鍾春, 23세, 1959년∼, 부산) : 휘 팔준(八俊, 보명은 容煥)의 자(子), 공학박사이다.
팔성(八成, 22세, 1944년∼, 서울) : 휘 범금(凡金, 보명은 柱範)의 자(子), 보명은 덕환(德煥)이고 우리금융지주회사 회장을 하다.
휘 규일(圭鎰, 21세, 1868∼1945) : 휘 광우(光宇)의 자(子), 자(字)는 계선(啓善)이고 증(贈) 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이다.
휘 승현(承鉉, 22세, 1894∼1963) : 휘 규일(圭鎰)의 자(子), 자(字)는 중경(中卿)이고 호(號)는 송사(松史)이며 적명(籍名)은 을생(乙生)이고 증(贈) 영내부주사(營內府主事)이다.
창민(昶旼, 24세, 1956∼, 서울) : 휘 홍재(洪在, 보명은 洪榮)의 자(子), 보명은 준대(俊大)이고 서울시 공무원에 임용되어 사무관을 하였고 녹조근정훈장(綠條勤政勳章)을 받다.
광식(光植, 24세, 1967∼): 휘 진영(珍英, 보명은 塡英)의 자(子), 보명은 순종(順鍾)이고 서울시경 경감을 하다.
박양자(朴良子, 23세 진웅(塡雄)의 처, 죽산박씨, 1943∼) : 휘 일원(一元)의 자부(子婦), 시부모 섬김이 지극하여 효부 표창장, 포상을 받다.
공보경(孔保冏, 24세 정종(晶鍾, 적명 靑樹)의 처, 곡부공씨, 1970∼) : 진웅(塡雄)의 자부(子婦), 국가공인회계사 및 세무사를 하다.
부식(富植, 24세, 1973∼) : 진웅(塡雄)의 자(子), 보명은 봉종(奉鍾)이고 농림축산식품부 사무관을 하다.
변혜옥(卞惠玉, 24세 봉종(奉鍾, 적명 富植)의 처, 밀양변씨, 1974∼) : 진웅(塡雄)의 자부(子婦), 국토교통부장관의 표창,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의 표창이 있다.
휘 규학(圭學, 21세, 1874∼1941) : 휘 광우(光宇)의 자(子), 자(字)는 문선(文善)이고 증(贈) 순능태봉승(順陵泰奉陞)정삼품(正三品)승정원(承政院)좌부비서승(左副秘書承)이다.
이옥자(李玉子, 24세 재원(在元)의 처, 경주이씨, 1959∼) : 석대(錫大)의 자부(子婦), 병무청 사무관을 하다.
휘 갑배(甲培, 23세, 1928∼2003, 하동 진교) : 휘 윤관(閏灌, 보명은 忠炫)의 자(子), 중고등학교 교장을 하다.
찬홍(燦弘, 24세, 1953∼) : 휘 갑배(甲培)의 자(子), LG연구소 부사장을 하였고 장영실과학상을 수상하다.
주홍(柱弘, 24세, 1957∼, 부산) : 휘 갑배(甲培)의 자(子), 내과의사를 하다.
영배(永培, 23세, 1940∼, 서울) : 휘 윤덕(潤德, 보명은 君炫)의 자(子), 중고등학교 교장을 하다.
춘배(春培, 23세, 1942∼, 서울) : 휘 윤덕(潤德, 보명은 君炫)의 자(子), 외과의사를 하다.
수철(壽哲, 24세, 1957∼) : 휘 정부(正富, 보명은 順富)의 자(子), 교회 장로를 하다.
휘 장인(章仁, 22세, 1914∼2001, 하동 진교) : 휘 덕범(德範, 보명은 圭範)의 자(子), 보명은 장현(章炫)이고 진교면 초대 면위원(1952∼1956)을 하다.
동현(東炫, 22세, 1936∼, 거제) : 휘 덕범(德範, 보명은 圭範)의 자(子), 보명은 창현(昌炫)이고 고등학교 교장을 하다.중기(仲基, 23세, 1970∼) : 동현(東炫, 보명은 昌炫)의 자(子), 천주교 사제를 하다.
동영(東榮, 23세, 1941∼, 서울) : 휘 장인(章仁, 보명은 章炫)의 자(子), 대한재보험주식회사 코리안리에서 이사(理事)를 하다.
호정(鎬汀, 24세, 1976∼,서울) : 동영(東榮)의 자(子), 중앙데일리(daily) 경제부 차장(次將)을 하다.
호진(鎬震, 24세, 1978∼,경기도 남양주) : 동영(東榮)의 자(子), 내과의사를 하다.
기 (基, 23세, 1950∼, 서울) : 휘 장인(章仁, 보명은 章炫)의 자(子), 보명은 동기(東基)이고 대한무역진흥공사(KOTRA)에서 차장(次長)을 하다.
휘 양옥(養玉, 23세, 1924∼1992, 진주) : 휘 순재(舜在, 보명은 在炫)의 자(子), 보명은 준옥(埈玉)이고 중학교 교장을 하였으며 홍조근정훈장(紅條勤政勳章)을 받다.
영근(英根, 24세, 1952∼, 하동 횡천) : 휘 양옥(養玉, 보명은 埈玉)의 자(子), 보명은 영종(英鐘)이고 호(號)는 휴휴(休休)이며 도교육청 장학관, 고등학교 교장을 하였고 홍조근정훈장(紅條勤政勳章)을 받았으며 대종회 수석부회장을 하다.
춘근(春根, 24세, 1954∼, 서울) : 휘 양옥(養玉, 보명은 埈玉)의 자(子), 보명은 춘종(春鐘)이고 한국 금융감독원 국장을 하다.
휘 계성(桂成, 22세, 1924∼?, 북한) : 휘 도수(道守, 보명은 圭漢)의 자(子), 보명은 계현(桂炫)이다. 14세 때 조선일보사 주최 전조선음악콩쿠르에서 바이올린 독주로 2등 입상하고 일제강점기 음악콩쿠르에 출연한 그의 기량에 대한 평은 朝光(1938)38호에 발표된 문학준의 평론 (제2회 전 조선남녀음악콩쿨 평)에 소개되다. 해방 후 1946년 연희전문 문과 재학 때 바이올린을 개인교수 받았고, 1946년 고려교향악단(高麗交響樂團)의 제1 바이올린 주자였으며 1947년 서울관현악단의 멤버로 활동하다. 1948년 서울교향악단에서 활동했고 1949년 9월 박민종(朴敏鍾)·김희조(金熙祚)·전봉초(全鳳楚)와 함께 박민종 4중주단을 창단하다. 1950년 6·25전쟁 때 조선인민군 전선경비대사령부 협주단 악장을 지내다. 1952년 조선중앙방송관현악단 연주가, 악장으로 활약했고 1964년부터 조선예술영화촬영소 관현악단 악장, 국립교향악단 악장을 지냈으며 1979년 공훈배우가 됐고 국기훈장 1급을 비롯한 훈장과 메달을 받다. 북한 국립교향악단 고문악장을 하다.
준아(俊娥, 23세, 1960∼, 서울) : 휘 계성(桂成)의 질녀(姪女), 해성(海成, 보명은 海炫)의 딸(女), 국립국악원(國立國樂院) 정악단(正樂團)에 소속하였고 국가 무형문화재 제41호 가사(歌詞) 예능보유자(藝能保有子, 2018년, 문화재청 지정)를 하다.
준범(埈範, 23세, 1985∼, 서울) : 용현(龍炫)의 자(子), 국가공인회계사를 하다.
헌준(憲俊, 23세, 1975∼) : 용권(龍權, 보명은 光炫)의 자(子), 천주교 사제를 하다.
휘 규형(圭炯, 21세, 1917∼1992, 남원) : 휘 성우(成宇)의 자(子), 자(字)는 장수(長壽)이고 어버이를 섬김에 지극한 효도로써(事親至孝) 표창이 있다(有表彰).
휘 준현(準炫, 22세, 1932∼2017, 진주) : 휘 영숙(瑛淑, 보명은 圭鉛)의 자(子), 호(號)는 송산(松山)이고 기상서기관(氣象書記官)으로 울진,통영,진주,마산 기상대장(蔚珍統營晋州馬山氣象臺長)을 하였고 녹조근정훈장(綠條勤政勳章)을 받다.
동현(東鉉, 22세, 1937∼, 순천) : 휘 봉석(鳳錫, 보명은 圭甲)의 자(子), 보명은 동현(東炫)이고 호(號)는 회정(晦亭)이며 초등학교 교장을 하였고 황조근정훈장 (黃條勤政勳章)을 받다.
연도(演都, 23세, 1967∼, 경기도 군포) : 동현(東鉉, 보명은 東炫)의 자(子), 보명은 중희(中熙)이고 철학박사이며 대학교 교수를 하였고 저서로서 근현대 중국 이상사회론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