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별 문중 종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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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종파별 문중 종친회는 다음의 해당 파를 선택하시면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2. 진사공파 문중
1) 파조
공(公)은 11세조로 휘(諱)는 위(緯)이며 자(字)는 관중(寬重)이고 호(號)는 백암(白庵)이다. 1510년 등과하여 홍문관 응교를 지내고 통정대부 승문원부제조 직에 올랐으니 진사공파의 파조이다.
공(公)의 후손은 봉정대부예문관응교, 오위도총부도사, 병마절제도제위, 소위장군의흥위호군, 승문원 판교 등의 벼슬로 대(代)를 이었고, 근년에는 1875년 5월 23세 휘 귀영(龜永)과 휘 혁영(赫永)이 나란히 무과에 합격하였다. 휘 귀영(龜永)은 1884년 3월 선략장군 용양위부사과에 오르고, 휘 혁영(赫永)은 1883년 10월에 절충장군(折衝將軍)의 교지를 받는 등 대(代)를 이어 번성하였다. 또한 병대(炳大)와 재옥(在玉)은 선대의 뜻을 잘 받들고 후손들에게 그 뜻이 이어지도록 하였다.
2) 세거지
진사공파는 세칭 ‘꽃바위’(현재 대전광역시 유성구 화암동)에서 한마을 안에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으며, 향리에서는 ‘꽃바위 이씨’로 널리 알려지며 번창하였고, 대전에서 우리 땅을 밟지 않고는 다닐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땅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조선 말기에 떼강도에 의하여 재산을 잃고 전라북도 김제로 다 함께 이주 하였는데,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염분과 침수의 논경지를 잘못 매수하여, 다시 논산의 부적면, 부창동, 가야곡면, 연무읍(구자곡), 대전 방동과 금고동에 분산 정착하였다. 지금은 대전, 논산, 계룡, 연무, 서울 등 전국 각지에서 크게 활동하며 과거 세칭 ‘꽃바위 이씨’로 불리던 명성을 되찾아 가고 있다.
3) 사천향원(泗川鄕苑)
1973년 2월 19일 종친회를 구성하고 기금을 조성해 오다가, 1985년 1월 1일부터 결혼한 종원은 백미 1가마를 매년 내게 하여 종친회의 기금을 조성하였다.
1997년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종연리 산7번지외 1필지 6,500여평을 매입하여 공원 묘역을 조성하고, 사천이씨의 관향에 따라 사천향원(泗川鄕苑)이라 이름하였다. 대전광역시 금고동(今古洞) 산43번지, 산45번지, 산106번지, 사정동, 대전 산내 등 전라북도 왕궁면 동용리 산17번지에 계시던 파조 위(緯)이하 모든 선영을 1998년 무인(戊寅) 윤5월 한 기의 소실 없이 이곳에 안장하였다.
매년 11월 첫째주 일요일에 진사공파 종원 모두가 사천향원에 모여 시제를 올리고 숭조돈목(崇祖敦睦)의 정신을 기리고 있다. 위 내용은 2026년 8월 현재의 상태에서 기록하였다. 후손은 대전광역시에서 우리 사천이씨 선대에 대한 유적이 발견되면 진사공파 문중으로 즉시 연락하기 바란다.
(각 종파별 문중 종친회는 다음의 해당 파를 선택하시면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2. 진사공파 문중
1) 파조
공(公)은 11세조로 휘(諱)는 위(緯)이며 자(字)는 관중(寬重)이고 호(號)는 백암(白庵)이다. 1510년 등과하여 홍문관 응교를 지내고 통정대부 승문원부제조 직에 올랐으니 진사공파의 파조이다.
공(公)의 후손은 봉정대부예문관응교, 오위도총부도사, 병마절제도제위, 소위장군의흥위호군, 승문원 판교 등의 벼슬로 대(代)를 이었고, 근년에는 1875년 5월 23세 휘 귀영(龜永)과 휘 혁영(赫永)이 나란히 무과에 합격하였다. 휘 귀영(龜永)은 1884년 3월 선략장군 용양위부사과에 오르고, 휘 혁영(赫永)은 1883년 10월에 절충장군(折衝將軍)의 교지를 받는 등 대(代)를 이어 번성하였다. 또한 병대(炳大)와 재옥(在玉)은 선대의 뜻을 잘 받들고 후손들에게 그 뜻이 이어지도록 하였다.
2) 세거지
진사공파는 세칭 ‘꽃바위’(현재 대전광역시 유성구 화암동)에서 한마을 안에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으며, 향리에서는 ‘꽃바위 이씨’로 널리 알려지며 번창하였고, 대전에서 우리 땅을 밟지 않고는 다닐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땅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조선 말기에 떼강도에 의하여 재산을 잃고 전라북도 김제로 다 함께 이주 하였는데,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염분과 침수의 논경지를 잘못 매수하여, 다시 논산의 부적면, 부창동, 가야곡면, 연무읍(구자곡), 대전 방동과 금고동에 분산 정착하였다. 지금은 대전, 논산, 계룡, 연무, 서울 등 전국 각지에서 크게 활동하며 과거 세칭 ‘꽃바위 이씨’로 불리던 명성을 되찾아 가고 있다.
3) 사천향원(泗川鄕苑)
1973년 2월 19일 종친회를 구성하고 기금을 조성해 오다가, 1985년 1월 1일부터 결혼한 종원은 백미 1가마를 매년 내게 하여 종친회의 기금을 조성하였다.
1997년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종연리 산7번지외 1필지 6,500여평을 매입하여 공원 묘역을 조성하고, 사천이씨의 관향에 따라 사천향원(泗川鄕苑)이라 이름하였다. 대전광역시 금고동(今古洞) 산43번지, 산45번지, 산106번지, 사정동, 대전 산내 등 전라북도 왕궁면 동용리 산17번지에 계시던 파조 위(緯)이하 모든 선영을 1998년 무인(戊寅) 윤5월 한 기의 소실 없이 이곳에 안장하였다.
매년 11월 첫째주 일요일에 진사공파 종원 모두가 사천향원에 모여 시제를 올리고 숭조돈목(崇祖敦睦)의 정신을 기리고 있다. 위 내용은 2026년 8월 현재의 상태에서 기록하였다. 후손은 대전광역시에서 우리 사천이씨 선대에 대한 유적이 발견되면 진사공파 문중으로 즉시 연락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