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별 문중 종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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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지공파  

진사공파 

참의공파 

첨정공파  

우소재공파

백인재공파

성균진사공파

선무랑공파

생원공파 

 

iq06.png 7. 성균진사공파 문중

 

1) 파조 및 세거지

계파인 7세손 이륜은 성균진사(成均進士)로 교도공의 가르침을 받아 하는 일마다 침착하고 성실하여 부모님을 보살피기 위하여 곁을 떠나지 않았고, 가문 대대로 효성이 지극하여 임금이 벼슬을 내렸으나 어버이 모시는 일로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그의 아들 맹주(孟柱, 8세)는 증직 통훈대부(通訓大夫)에 오르고 통례원좌통례(通禮院左通禮)의 은전을 받았으며, 또한 효행으로 아버지 상(喪)을 법도에 따라 바르게 행하였음으로 향당(鄕黨)의 칭송을 받았다. 맹주의 큰아들 이번(以蕃 : 9세)은 공조참의(工曹叅議)에 증직되고, 둘째인 이창(以昌)은 호조정랑(戶曹正郞)에 증직되었다.

 

10세손 두(斗)는 이창의 아들로 진읍사(晋邑司) 연방(蓮榜)에 올라 생원이 되고, 그의 두 아들을 두었는데, 첫째가 휘 번(藩)이고, 둘째가 근(根)이다. 11세손인 번(藩)은 성균진사로 구암선생(龜巖先生)과는 재종형제간(再從兄弟間)으로 성균진사공파의 파조(派祖)이다. 그는 보공장군(保功將軍, 종3품)을 지낸 은(銀)과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오른 연(椽)의 두 형제분을 두었고, 그 아래에 품계와 지체가 높은 많은 자손을 둠으로서 예후(裔後)의 창성을 도모하였으며, 묘소는 양위분 함께 현 용현면 통양리 후산 간좌(艮坐)에 있다.

아들인 12세의 은(銀)과 연(椽) 형제분이 약 400여 년전에 선향(先鄕)인 구암에서 사동(泗東) 화암(花岩)으로 이주하였는데, 이후 후손들은 사천을 중심으로 화암, 대곡(大谷), 만마(萬馬), 용두(龍頭), 병둔(兵屯), 신복(新復) 등지에 세장지(世葬地)를 두고, 근래에는 연고지를 떠나 진주, 마산, 창원, 부산, 대구, 서울 등지에서 거주하는 후손들이 많다.

 

2) 선조 재실

(1) 경덕재(敬德齋)

재실명칭

모선재(慕先齋)

문 중 명

성균진사공파 대곡문중

소재지

경남 사천시 사남면 죽천리 593번지

토지면적

641㎡

건물면적

42.98 ㎡

구조

목조

건축년도

1974

소유명의

성균진사공파 대곡문중

대 표 자

26세 이춘도

비고

 

 

11세조이신 성균진사공(成均進士公), 휘 번(藩, 1520년대)의 향사당(享祀堂)으로 사천의 용두리(龍頭里)에 있다. 공(公)의 큰 아들이신 별시위 보공장군(別侍衛, 保功將軍) 휘 은(銀)의 예후(睿後) 소문중 자손들이 정성을 모아 재실(齋室)을 이루고 파조 할아버지를 위시(爲始) 직계(直系)의 신위를 모두 한 자리에 모시었으니 도리를 다하여 높이 우러러 받들고 명부(冥府)의 영안(寧晏)을 기원함이 조상의 은덕(恩德)을 사모(思慕) 함이며 공경(恭敬)함이라 그 미성(微誠)을 재실(齋室)에 부촉(咐囑) 하였다.

 

1974년 갑인년에 이영준, 이종점 등 종인 약간명의 협찬금으로 사천시 사남면 죽천리 593번지 대지 641㎡(194평) 평기와 4칸, 5영, 부속사 2동을 구입하여 이를 모선재(慕先齋)라 하고, 매년 음력 10월 2째주 일요일 10:00~14:00 파조 11세 휘 번(藩) 조 외 100여 휘 선을 제당위에 위패를 모시고 제향하고 있다.

 

 

(각 종파별 문중 종친회는 다음의 해당 파를 선택하시면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참지공파  

진사공파 

참의공파 

첨정공파  

우소재공파

백인재공파

성균진사공파

선무랑공파

생원공파 

 

iq06.png 7. 성균진사공파 문중

 

1) 파조 및 세거지

계파인 7세손 이륜은 성균진사(成均進士)로 교도공의 가르침을 받아 하는 일마다 침착하고 성실하여 부모님을 보살피기 위하여 곁을 떠나지 않았고, 가문 대대로 효성이 지극하여 임금이 벼슬을 내렸으나 어버이 모시는 일로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그의 아들 맹주(孟柱, 8세)는 증직 통훈대부(通訓大夫)에 오르고 통례원좌통례(通禮院左通禮)의 은전을 받았으며, 또한 효행으로 아버지 상(喪)을 법도에 따라 바르게 행하였음으로 향당(鄕黨)의 칭송을 받았다. 맹주의 큰아들 이번(以蕃 : 9세)은 공조참의(工曹叅議)에 증직되고, 둘째인 이창(以昌)은 호조정랑(戶曹正郞)에 증직되었다.

 

10세손 두(斗)는 이창의 아들로 진읍사(晋邑司) 연방(蓮榜)에 올라 생원이 되고, 그의 두 아들을 두었는데, 첫째가 휘 번(藩)이고, 둘째가 근(根)이다. 11세손인 번(藩)은 성균진사로 구암선생(龜巖先生)과는 재종형제간(再從兄弟間)으로 성균진사공파의 파조(派祖)이다. 그는 보공장군(保功將軍, 종3품)을 지낸 은(銀)과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오른 연(椽)의 두 형제분을 두었고, 그 아래에 품계와 지체가 높은 많은 자손을 둠으로서 예후(裔後)의 창성을 도모하였으며, 묘소는 양위분 함께 현 용현면 통양리 후산 간좌(艮坐)에 있다.

아들인 12세의 은(銀)과 연(椽) 형제분이 약 400여 년전에 선향(先鄕)인 구암에서 사동(泗東) 화암(花岩)으로 이주하였는데, 이후 후손들은 사천을 중심으로 화암, 대곡(大谷), 만마(萬馬), 용두(龍頭), 병둔(兵屯), 신복(新復) 등지에 세장지(世葬地)를 두고, 근래에는 연고지를 떠나 진주, 마산, 창원, 부산, 대구, 서울 등지에서 거주하는 후손들이 많다.

 

2) 선조 재실

(1) 경덕재(敬德齋)

재실명칭

모선재(慕先齋)

문중명

성균진사공파 대곡문중

소재지

경남 사천시 사남면 죽천리 593번지

토지면적

641㎡

건물면적

42.98 ㎡

구조

목조

건축년도

1974

소유명의

성균진사공파 대곡문중

대 표 자

26세 이춘도

비고

 

 

11세조이신 성균진사공(成均進士公), 휘 번(藩, 1520년대)의 향사당(享祀堂)으로 사천의 용두리(龍頭里)에 있다. 공(公)의 큰 아들이신 별시위 보공장군(別侍衛, 保功將軍) 휘 은(銀)의 예후(睿後) 소문중 자손들이 정성을 모아 재실(齋室)을 이루고 파조 할아버지를 위시(爲始) 직계(直系)의 신위를 모두 한 자리에 모시었으니 도리를 다하여 높이 우러러 받들고 명부(冥府)의 영안(寧晏)을 기원함이 조상의 은덕(恩德)을 사모(思慕) 함이며 공경(恭敬)함이라 그 미성(微誠)을 재실(齋室)에 부촉(咐囑) 하였다.

 

1974년 갑인년에 이영준, 이종점 등 종인 약간명의 협찬금으로 사천시 사남면 죽천리 593번지 대지 641㎡(194평) 평기와 4칸, 5영, 부속사 2동을 구입하여 이를 모선재(慕先齋)라 하고, 매년 음력 10월 2째주 일요일 10:00~14:00 파조 11세 휘 번(藩) 조 외 100여 휘 선을 제당위에 위패를 모시고 제향하고 있다.